발달장애인 범죄피해 수사 ‘구조적 한계’…전북지역공동, 제도 개선 촉구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사법 취약계층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도 끝까지 피해자로 남지 못하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배제되는 이중 피해를 겪고 있다. 전북의 현실은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북의 한 특수학교에서는 장애학생 간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학교와 교육당국의 잘못된 보고와 부실한 조사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뒤바뀐 채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버린 사례가 있었다. 최근에는 전북의 한 통합고등학교에서 자폐성 장애학생이 장기간 괴롭힘과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지만, 학교와 교육당국의 조사 지연과 학교폭력 역신고사태로 인해 피해 보호보다 사건 부담을 줄이는 데 더 무게를 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개별 학교나 시설의 일탈을 넘어, 발달장애인 범죄피해 사건을 다루는 수사·교육·행정 전반의 구조적 실패를 보여준다.
문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장애인복지법과 형법, 여러 특별법에 장애인 학대와 관련된 규정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이 규정들은 각 법률 곳곳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현장에서 하나의 통합된 보호·수사 체계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발달장애인 피해자는 학교·시설·지자체·수사기관을 전전하며 각자 다른 절차와 기준에 내몰리고, 그 과정에서 진술의 신빙성은 쉽게 의심받고 피해 사실은 왜곡되거나 사라진다. 이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서로 연결되지 않고 사법 취약계층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다.
전담수사관, 진술조력인,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는 형식적으로 마련되어 있지만, 전북의 현장에서 이 제도들은 “서류상 존재”에 머무르고 있다. 발달장애 여부를 식별할 표준화된 체크리스트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관은 피조사자의 장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반 사건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발달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질문 방식과 진술 평가 기준 속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오히려 “모순된다”,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특수학교와 통합고등학교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구조적 패턴이기도 하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역할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전북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장애인 학대 의심 현장에 출동하고, 피해자의 응급조치와 상담·사후 지원을 담당하지만, 특별사법경찰권이 부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증거 확보나 가해자에 대한 강제 조치를 직접 수행할 수 없다. 결국 권익옹호기관이 학대 의심 사례를 포착해도, 정작 수사 개시는 일반 경찰의 재량과 일정에 좌우되고, 그 사이 발달장애인 피해자의 취약한 기억은 희미해지며 가해자에 의한 회유·협박 가능성은 커진다. 이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권익옹호기관을 “보조자”로만 위치지운 결과다.
현행 조력 제도는 지나치게 ‘피해자’ 지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발달장애인이 피의자·피고인으로 수사선상에 올랐을 때 방어권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한 진술조력인 제도는 범죄 피해자를 명시적 대상으로 하는 반면, 의사소통 장애를 겪는 발달장애 피의자는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경찰 단계에서의 필요적 국선변호인 제도 역시 일부 중대 범죄와 특정 상황에 한정되어 있어, 경제적·사회적 취약성을 동시에 지닌 발달장애 피의자는 수사 초기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린다. 그 결과, 수사관의 유도 질문에 끌려 허위 자백이나 과도한 혐의를 떠안게 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전북지역공동은 이러한 구조적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층적 법·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첫째, 전담수사관을 단순 지정이 아닌 전문 보직으로 운영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지심리·의사소통 조력에 대한 필수 교육을 이수한 인력만을 전담수사관으로 임용하고, 최소 3년 이상 전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전담수사관이 일반 형사 업무와 혼재된 채 명부상으로만 존재하는 현재 구조로는, 발달장애인 사건 수사의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수사 초기 단계에서 발달장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표준 식별 체크리스트를 도입·의무화해야 한다. 장애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피조사자의 이해 능력, 질문 반응, 언어 사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를 활용해 의사소통 장애가 의심되는 즉시 진찰·조력을 연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체크리스트와 연동하여, 진술조력인·신뢰관계인·국선변호인의 지원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정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수사관의 주관과 선의에 맡겨진 조력 제공의 편차를 줄여야 한다.
셋째, 진술조력인 제도의 근거를 형사소송법으로 이관하고, 지원 대상을 피해자뿐 아니라 피의자·피고인까지 확대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상 의사소통 장애를 겪는 모든 피조사자의 권리로서 진술조력인 신청을 명문화하고, 수사기관이 조사를 개시하기 전에 진술조력인의 사전 평가와 예비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발달장애 피의자에 대한 경찰 단계 필요적 국선변호인 제도를 도입하여, 기소 이전부터 실질적인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
넷째, 흩어져 있는 장애인 학대 관련 규정을 하나로 통합하는 「장애인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 법에서 발달장애인을 표적으로 삼은 노동력 착취, 경제적 예속, 시설 내 상습 학대, 성폭력 등을 구체적인 학대 범죄 유형으로 규정하고, 죄질에 상응하는 형량 하한과 가중처벌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동시에, 전담 조사체계와 필수적인 공판준비절차를 규정하여, 피해자의 진술이 다시 왜곡·부정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절차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사법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사법적 조력은 시혜가 아니라 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의무다. 전북에서 2년에 걸쳐 진실이 뒤집힌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과, 현재 진행형인 장애학생 성폭력 및 맞고소 사태는, 발달장애인 사건 수사의 구조적 결함이 어떻게 실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전북지역공동은 전북의 사법기관과 교육당국, 지방정부, 그리고 국회에 요구한다. 발달장애인이 법 앞에서 또다시 피해자로 뒤바뀌는 현실을 언제까지 개별 사건으로만 치부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2년, 새로운 7개월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것인가.
발달장애인이 법 앞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회,
사법 취약계층이 수사와 재판 과정 전체에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법 정의의 출발점이다.
2026.7.24
전북지역공동